총 게시물 81건, 최근 1 건
   

2017년 7월 30일 (주일설교) 낮은 우리를 높게 여기시는 하나님

글쓴이 : 미디어팀 날짜 : 2017-07-31 (월) 22:36 조회 : 28

제목: 낮은 우리를 높게 여기시는 하나님 (막 9:33-37), 17-07-30, 주

1. 우리 예님은 정말 위대한 분이십니다.

- 얼마나 위대하고, 얼마나 놀랍고, 얼마나 존귀한 분이신지,

- 옛날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 영원토록 모든 사람들의 예배와 경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한 분이십니다.

2. 왜 그렇습니까?

- 죄 없으신 분이 우리 같은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이 땅에 오셔서 우리가 받아야 할 형벌을 대신 받고 돌아가심으로 우리를 구원해 주셨기 때문이지요.

(1) 우리는 우리의 죄로 인하여 지옥형벌의 심판을 받아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구덩이에서 목이 쉬도록 고통의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2)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고, 영원히 고통 속에서 몸부림 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3) 그런데 예수님이 그런 우리를 구원해 주셔서 영원한 천국에서 하늘의 축복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도록 해 주셨습니다.

3. 그것도, 다른 사람에게 죄를 지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죄를 지은 사람들을 구원하시려고 그렇게 하셨습니다.

- 그러니까 예수님은 아주 친한 이웃이나 친구를 위해서 돌아가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 하나님께 죄를 지음으로 원수가 된 죄인들을 위하여 돌아가신 것이었습니다.

4.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사람들만 예수님을 그렇게 높이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 예수님이 죄인들의 구세주라는 것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예수님을 높이 평가합니다.

- 그래서 온 세계가 인정하는 성인 중의 한 사람으로 높이 생각합니다.

- 그만큼 예수님은 큰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5. 그렇다면 그런 예수님의 희생을 오늘 본문의 내용과 연관해서 볼 때에 한 마디로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 저는 이렇게 표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우주만물을 다스리시고 주관하시는 큰신 예수님이 지옥형벌을 받아 마땅한 낮고 천한 죄인들을 섬겨 주셨다.”

- 다른 말로 하며, 예수님이 크고 위대하신 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그가 낮고 천한 죄인들을 귀하게 여겨서 목숨 바쳐 섬겨 주셨다는 것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6.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아무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고 하신 말씀이 바로 그 말입니다. (막 9:35)

7. 지난 두 주간 동안 살펴본 것처럼 예수님은 지금 계속해서 제자들에게 당신의 죽으심에 대해서 말씀해 해 오고 계셨습니다.

-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높고 귀한 신분을 가지신 분으로서,

- 지옥의 불쏘시개로 쓰임을 받을 것 밖에 없는 낮고 천한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당신을 희생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즉, 그렇게 높으신 분이 그렇게 낮은 우리를 섬기시겠다는 것입니다.

- 그런데 제자들은 그런 예수님 앞에서 “누가 더 크냐?”라는 것 가지고 서로 논쟁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8. 공교롭게도 오늘 말씀은 지난 2월 21일 (화요일) 새벽에 나눈 말씀과 똑 같은 내용입니다.

- 그 때는 눅 9:46절 이하에 나오는 내용을 살펴보았는데 그 내용이 오늘 본문 내용과 똑 같습니다.

- 그 때 말씀을 나누면서 새벽예배에 나오시는 분들 뿐만 아니라 우리 교회 온 성도님들과 함께 나누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 그런데 감사하게도 오늘 본문 내용이 그 때 내용과 똑 같아서 주님이 주신 기회라는 생각이 듭니다.

- 그래서 그 때 나눈 내용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9. “누가 더 크냐?”

- 이 질문은 아마 인류의 가장 오래 된 질문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입니다.

(1)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선악과를 따 먹은 것 부터가 이미 “누가 더 크냐?”라는 질문 때문이었습니다.

- 간교한 마귀는 아담과 하와로 하여금 선악과를 따 먹으면 하나님 만큼 눈이 밝아질 것이라면서 유혹했습니다.

- 즉, 아담과 하와로 하여금 하나님과 자신들을 비교하도록 해서 누가 더 크냐라는 질문에 해당하는 시험을 했던 것입니다.

(2) 가인이 아벨을 죽인 것도 결국은 “누가 더 크냐?”라는 질문 때문이었습다.

- 하나님이 자기를 크게 보아주기를 원했는데 아벨을 더 크게 보셨던 것입니다.

(3) 노아의 홍수 이후에 사람들이 바벨탑을 쌓은 것도 “하나님보다 내가 더 크다”라는 말을 하고 싶어서 그랬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입니다.

10. 그 이후로 인류의 모든 전쟁도 따지고 보면 “누가 더 크냐?”라는 질문 때문에 일어났습니다.

- 사람들이 서로서로 경쟁하듯이 치열하게 살아가는 것도 따지고 보면 “누가 더 크냐?”라는 질문이 깔려있습다.

- 크게는 나라와 나라가 다투는 것부터 시작해서,

- 작게는 형제들 사이의 다툼까지,

- 모든 다툼은 “누가 더 크냐?”라는 것입다.

11. 선진국들은 서로 앞 다투어 가면서 세계에서 제일 높은 빌딩을 짓는다고 야단들입니다.

- 모두 “누가 더 크냐?”라는 질문 때문입니다.

(1) 누구의 군사력이 더 크고,

(2) 누구의 경제가 더 크고,

(3) 누구의 학문이 더 깊으며,

(4) 누구의 실력이 더 크냐라는 것 때문에 세상이 돌아간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입다.

- 심지어 어느 대학을 나왔고, 어디서 직장생활을 하고, 누구의 아들이 누구의 아들보다 낫고, 등등. . .

- 모든 것들은 저눕 “누가 더 크냐?”라는 질문에 해당하는 일들입다.

12. 이렇게 “누가 더 크냐?”라는 질문은 이 세상 어느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시험이요 유혹입니다.

- 심지어 부부간에도 “누가 더 크냐?”라는 것 때문에 싸우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 그래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매일 매일 이 질문과 맞닥뜨리며 살아가고 있습다.

13. 예수님의 제자들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 그래서 예수님을 따라가면서 끊임없이 그들 머리 속에 맴돌던 질문이 바로 이 질문이었습니다.

- “누가 더 크냐?”

- 그랬기 때문에 틈만 나면 이 질문을 가지고 서로 불꽃 튀기며 논쟁을 했던 것입니다.

14. 그러자 예수님은 어린 아이 하나를 곁에 세우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라” (막 9:37)

15. 여기에서 “어린아이를 영접한다”는 말은 “어린아이를 섬긴다”는 말입니다.

- NIV에서는 “Welcome” 이라고 했고,

- KJV에서는 “Receive”라고 했습다.

- 둘 다 어린아이를 기꺼이 받아 들이고 섬긴다는 의미가 있습다.

16. 그러니까 “누가 더 크냐?”라는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기준은 세상의 기준과는 분명히 다르다는 것을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 즉, 하나님의 계산법에 의하면 낮은 자를 섬기는 자가 큰 자라는 것입니다.

- 다른 말로하면 다른 사람을 크게 보이도록 해 주는 사람이 큰 자라는 것입다.

17. 그런데 다른 사람, 특별히 작은 자를 크게 보이도록 해 주는 사람을 크게 여기는 것은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 가만히 살펴보면 이미 이 세상은 그렇게 작은 자가 크게 보이도록 해 주는 사람을 큰 사람이라고 인정하고 있습니다.

- 그래서 나이팅게일 같은 사람, 슈바이쳐 같은 사람을 크게 보는 것입니다.

- 작은 자들을 큰 자처럼 섬겼기 때문이었다.

18. 반대로 작은 자들이 작다고 함부로 하는 사람들을 낮게 여기기도 합니다.

(1) 히틀러 같은 사람은 낮은 자를 더욱 낮게 대했던 사람이었습니다.

- 유태인들이 약하다고 약하게 대했던 사람이었습다.

- 그리고 역사는 히틀러는 어떻게 보는지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2) 2차 대전 때에 미국의 Patton 장군이 부상병들을 돌아보던 중에 전쟁이 무섭다고 우는 어린 사병을 때린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 마음이 약한 사병이 나약하다고 낮게 대했던 것입다.

- 그랬다가 결국은 그 부상병에게 뿐만 아니라 자기가 지휘를 하는 모든 군인들 앞에서 공개 사과를 해야만 했습니다.

- 낮은 자를 낮게 대했다가 자기가 더 낮아져 버렸던 것입니다.

19. 그랬다가 자기의 잘못은 인정하고 공개 사과를 하고 난 후에는 오히려 더 큰 지휘관으로 부하들에게 사랑존경을 받게 되었습니다.

- 자기보다 낮은 사병들 앞에서 자기 자신을 더 낮출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20. 이렇게 낮은 자섬기는 자가 큰 자가 되고,

- 이웃을 배려하는 자가 사랑과 존경을 받는 것은

- 하나님의 창조질서입니다.

- 그리고 모든 축복은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지킬 때에 주어집니다.

21. 예수님은 온 우주만물의 영광과 찬양과 존귀를 한 몸에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1) 그런데 그렇게 높으신 분이 지옥불에 던져져야 할 만큼 낮고 천한 죄인들을 섬기러 오셨습니다.

(2) 그래서 제자들에게 지금 당신이 그렇게 낮고 천한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야 한다는 것은 제자들에게 말씀해 주고 계셨습니다.

(3) 그런데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그렇게 당신의 죽음에 대해서 절실하게 말씀을 하시는데도 불구하고 그 앞에서 “누가 더 크냐?”라는 것 가지고 서로 논쟁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 그랬으예수님의 마음이 얼마나 답답하셨겠습니까?

22. 하나님은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고, 주관하시는 분이십니다.

- 그런데 그렇게 어마어마하게 높으신 분이 우리 같이 낮고 초라한 죄인들을 크게 여기셔서 섬겨 주셨습니다.

- 그리고 우리를 영원한 지옥형벌에서 구원하여 영원한 천국영생을 누리도록 해 주셨습니다.

- 그러시면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1) “아무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막 9:35)

(2)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라” (막 9:37)

23. 그래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예수님을 구주라고 부른다면,

- 우리 역시 예수님을 닮아 우리보다 작은 자를 섬기는 것이 마땅할 것입니다.

(1) 그래서 우리보다 약한 자를 비난/비판 할 것이 아니라 섬겨주고,

(2) 우리보다 낮은 자를 무시/멸시/조롱할 것이 아니라 세워주고,

(3) 우리보다 못한 것 같은 사람일지라도 높여주고, 칭찬해 주며,

(4) 실수와 허물을 들추어 내고, 소문을 퍼뜨릴 것이 아니라 덮어주어야 할 것입니다.

- 그래서 잠 17:9절에서는 “허물을 덮어 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 자요 그것을 거듭 말하는 자는 친한 벗을 이간하는 자니라”고 했습니다.

- 또, 사도 바울도 벧전 4:8에서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찌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고 했습니다.

24.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오히려 낮고 천한 우리 같은 죄인들을 큰 사람으로 여기고 섬겨주셨습니다.

- 그러므로 우리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고, 모시고, 섬기는 그리스도인 답게

- 이웃을 섬기고, 낮은 자를 크게 여기고, 세워줌으로 주 앞에서 큰 사람들이 되기를 우리를 섬겨주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