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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7월 23일 (주일설교) 죽은지 삼일만에 살아나실 예수님

글쓴이 : 미디어팀 날짜 : 2017-07-24 (월) 22:51 조회 : 53
제목: 죽은지 삼일만에 살아나실 예수님 (막 9:30-32), 17-07-23, 주

1. 예수님은 죄인들을 위하여 죽으려고 오셨 분이십니다.

- 그랬기때문에 예수님의 머릿속에는 늘 십자가의 죽음에 대한 생각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1) 이 땅에 오시기 위하여 하늘보좌를 떠날 때부터 이미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을 생각하고 계셨습니다.

(2) 세레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을 때에도 십자가의 죽음을 생각하셨습니다.

(3) 매일 새벽 홀로 기도하러 산으로 올라가실 때에도 십자가의 죽음을 생각하셨습니다.

(4) 변화산상에서 모세와 엘리야와 대화를 나누셨을 때에도 십자가의 죽음을 생각하셨습니다.

(5) 12 제자를 택하셨을 때에도 십자가의 죽음을 생각하셨습니다.

(6) 특별히 바리새인들과 논쟁을 하실 때에도 십자가의 죽음을 생각하셨습니다.

- 이렇게 예수님은 단 하루도 십자가의 죽음을 생각하지 않으시는 날이 없었습니다.

2. 그러다가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셨을 때에 먼저 제자들에게 당신의 십자가의 죽음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 언제 말씀해 주셨습니까?

- 얼마전에 살펴 보았지요.

-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라는 질문을 던지신 적이 있었지요.

- 그리고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라고 물으셨지요.

- 그 때 베드로가 대답하기를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는 고백을 했지요. (막 8:29)

- 그러자 예수님은 베드로를 크게 칭찬하셨지요.

-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거린바 되어 죽임을 당하여야 하리라”고 하셨지요. (막 8:31)

- 그러자 그 때부터 제자들은 예수님의 죽으심에 대한 두려움을 품게 되었습니다.

3. 그러던 차에 변화산상의 사건이 있었습니다.

- 그리귀신들린 아들을 고치시는 일이 있었습니다.

- 그 후로 예수님은 틈만 나면 당신의 죽으심에 대해서 제자들에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 그랬으니 제자들은 얼마나 걱정이 되고 두려웠겠습니까?“

- 그래서 본문 32절에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 “그러나 제자들은 이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묻기도 무서워하더라”

- 무슨 말입니까?

- 제자들은 예수님이 이제 곧 죽을 것이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1) 예수님이 왜 갑자기 자꾸 죽을 것이라고 하시는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2) 예수님이 무슨 일로 죽으신다는 것인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3) 예수님이 어떻게 죽으실 것인지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 다만 예수님이 이제 곧 죽으신다고 하시니까 정말 죽으시면 어뗳게 하나라는 두려운 생각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4. 그런데 본문 32절을 가만히 보면 놀라운 사실을 한 가지 발견할 수 있습니다.

- 즉, 제자들은 예수님의 죽으심에 대해서 전혀 두려워 해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 그러니까 제자들은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인하여 두려워 할 것이 하나도 없는데 괜히 쓸데 없는 걱정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 도대체 본문 32절에서 무슨 말을 하고 있기에 제자들이 그렇게 두려워하는 것은 쓸데 없는 걱정이라는 것입니까?

5. 딱 한 마디 말에 힌트가 있습니다.

- “깨닫지 못하고”라는 말입니다.

- 무엇을 깨닫지 못했다는 것입니까?

-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깨닫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6. 조금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제자들은 예수님이 이제 곧 죽으실 것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큰 두려움에 사로잡히고 말았습니다.

(1) 제자들은 예수님을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할 메시야 (구원자)로 믿었습니다.

(2) 예수님이 로마를 쳐 부수고 이스라엘의 독립을 이룰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3) 예수님이야 말로 놀라운 능력을 가진 이스라엘의 지도자라고 믿었습니다.

(4) 그래서 가족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라 다녔습니다.

(5) 직장도, 사업도, 모두 내려 놓고 예수님만 따라다녔습니다.

(6) 예수님이 그들의 삶의 전부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만큼 예수님만 바라보았습니다.

7. 그런데 그런 예수님이 이제 곧 죽을 것이라고 하니 얼마나 놀랬겠습니까?

- 평생 모은 재산이 한꺼번에 사라져 버리는 것보다 더 놀라지 않았겠습니까?

- 하룻밤 만에 모든 재산과 자녀들을 잃어버린 욥과 같지 않았겠습니까?

- 가족도, 사업도, 직장도 다 팽개치고 예수님만 믿고 따라 다녔는데 아무것도 한 것도 없이 자꾸 죽을 것이라고만 하니 얼마나 황당하고 두려웠겠습니까?

8. 뿐만 아니라 그들은 예수님을 따라 다닌다는 것 때문에 그 당시 정치적, 종교적 권력을 모두 쥐고 있던 바리새인들에게 큰 미움을 받고 있었습니다.

- 그렇지만 예수님 때문에 바리새인들로부터 큰 피해를 받지 않고 있었습니다.

- 그런데 예수님이 돌아가시고 나면 바리새인들이 그들에게 무짓을 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9. 그러다 보니 제자들의 마음에는 온통 예수님이 돌아가시면 큰 일이다라는 생각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 그래서 앉으나 서나, 누우나, 길을 가나, 온통 예수님이 돌아가시면 안 된다는 생각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10. 놀랍게도 바로 이 부분이 제자들이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부분이었습니다.

- 즉,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당신의 죽으심에 대한 말씀만 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 그러면 예수님은 당신의 죽으심 외에 또 무엇을 제자들에게 말씀해 주셨다는 것입니까?

-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당신의 죽으심에 대한 말씀만 하신 것이 아니라 당신의 살아나심에 대한 말씀도 해 주셨습니다.

- 그런데 제자들은 예수님의 죽으심에 대한 것만 생각하고 다시 살아나실 것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11.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을 다시 한 번 보십시다.

- 막 8:31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저희에게 가르치시되”

- 막 9:31 “이는 제자들을 가르치시며 또 인자가 사람들의 손에 넘기워 죽임을 당하고 죽은지 사흘 만에 살아나리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연고더라”

12. 이렇게 예수님은 당신의 죽으심에 대해서 말씀하실 때마다 꼭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심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 그렇다면 예수님은 지금 당신의 죽으심을 강조하시려는 것입니까,

- 아니면 당신의 다시 살아나심을 강조하시려는 것입니까?

- 당연히 당신의 다시 살아나심을 강조하시려는 것이지요.

- 이제 곧 내가 죽임을 당할 것이지만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13. 그렇다면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지금 당신의 죽음으로 인하여 걱정하고 두려워하라는 것입니까,

- 아니면, 사흘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니까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하여 용기를 내라는 것입니까?

- 당연히 죽음으로 인하여 두려워하기 보다는 부활로 인하여 담대하고 용기를 내라는 것이지요.

14.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기독교에 대해서 한 가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라는 것입니다.

- 죽음이라는 고통과 아픔이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 그렇지만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죽음 후에는 부활이라는 영광이 있고, 천국영생이라는 축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 그러니까 죽음이라는 고통과 아픔을 보기 보다는 부활이라는 영광과 천국영생의 축복을 보라는 것입니다.

15. 그래서 기독교는 긍정의 종교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 하나님은 인생의 모든 부정적인 것들을 모두 긍정적인 것으로 바꾸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 그래서 하나님은 성경에 이런 말씀들을 기록해 놓으셨습니다.

(1)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롬 8:28)

- 힘들고 어려운 일, 고통과 아픔이 되는 부정적인 일이라고 해도 하나님은 모두 긍정적인 축복으로 바꾸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2)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사 41:10)

- 이 말씀 역시 지금은 두려움을 느낄 만한 일이 있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함께 해 주셔서 충분이 이길 수 있도록 해 주실 것이라는 말씀이지요.

(3) 또, 시 30:5절에는 이런 말씀도 있습니다.

- “저녁에는 울음이 기숙할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시 30:5)

- 세상에 속한 오늘의 슬픔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하나님 안에 있내일의 기쁨에 초점을 맞추라는 것이지요.

16. 지난 금요일 새벽에 함께 나눈 말씀이 있습니다.

- 엡 4:29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데 소용되는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 영어로는 “Do not let any unwholesome talk come out of your mouths, but only what is helpful for building others up according to their needs, that it may benefit those who listen.”

- 그러니까 “더러운 말”이라고 해서 꼭 지저분한 욕설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 “더러운 말”은 이웃을 낙담/실망하게 하고, 힘과 용기를 잃게 하며, 걱정하고, 불안해 하고, 두려워하도록 하는 말도 포함된다는 것입니다.

- 그러니까 이웃을 낙심시키고, 실망하게 하고, 불안하게 하고, 두려워 하도록 하는 말을 하기보다는 힘과 용기, 소망과 희망을 주는 말을 하라는 것입니다.

- 즉, 세상에 속한 오늘의 고통을 보기 보다는 하나님 안에 있는 내일의 축복과 소망을 바라보도록 서로서로 힘과 용기를 불어 넣어 주라는 것입니다.

17. “좋은 생각”이라는 월간지에 실린 실화입니다.

- 어느 회사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사람이 있었는데 어느 날, 과장님이 하시는 말을 듣고 그 때부터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기 시작했답니다.

- 그 이야기의 전말은 이렇습니다.

- 그 사람과 같은 과에서 일하던 사람 중입만 열었다 하면 그 자리에 없는 다른 사람을 흉보는 사람이 있었다고 합니다.

- 그래서 회사 직원 중에 어느 누구도 그 사람 곁에 가려고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 그러던 중에 하루는 멀지방으로 출장을 가게 되었는데 하필이면 그 사람과 같이 가게 되었습니다.

- 그래서 하루종일 그 사람 다른 사람 흉보는 소리를 들을 생각을 하니까 차라리 회사를 그만 두고 싶은 심정이었답니다.

- 그래서 평소에 자기를 많이 아껴 주시던 과장님에게 답답한 마음을 털어 놓았습니다.

- 그랬는데 그 과장님이 하시는 말씀 한 마디로 인하여 그 다음부터 모든 일을 긍정적으로 보려고 노력하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 그 과장님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 “그래도 자네가 그 사람과 함께 있는 동안에는 자네 흉은 보지 않을 것 아닌가.”

18. 세상을 사는 동안 우리도 오늘 본문에 나오는 제자들과 같은 모습으로 살아갈 때가 종종 있는 것 같습니다.

- 예수님은 당신의 죽으심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죽음 후의 부활을 말씀하시려는 것인데,

- 제자들은 예수님의 내일의 부활의 소망과 영광보다는 오늘의 슬픔과 두려움만 생각했던 것처럼,

-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생의 소망과 내일의 행복을 약속해 주셨는데,

- 우리는 오늘의 고통과 아픔만 보고 염려하고, 걱정하고, 두려워하는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19.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입니다.

- 죽음과 지옥형벌이라는 절대절망을 부활과 천국영생이라는 절대희망으로 바꾸어주는 분이 우리 주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세상에 속한 오늘의 고통과 아픔과 두려움 보다는 하나님 안에 있는 내일의 소망과 축복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 그리고 세상에 속한 부정적인 말로 서로에게 걱정과 염려와 불안함과 두려움을 심어주기 보다는,

- 하나님께 속한 긍정적인 말로 서로에게 하늘의 힘과 용기와 소망을 서로 주고 받는 우리가 교회로 함께 만들어 가기를 바랍니다. (부정 끝, 긍정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