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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7일 (주일설교) 이해 할 수 없는 하나님

글쓴이 : 미디어팀 날짜 : 2022-04-22 (금) 23:17 조회 : 68
이해 할 수 없는 하나님 (시 73:1-3, 16-19)

1. 한국 드라마를 보는 분들 중에 어떤 드라마는 분통이 터져서 못 보겠다고 하는 경우가 있다.
-언제 그런 경험을 하는가?
-악한 사람이 착한 사람보다 잘 되는 것을 볼 때다.
-그런 드라마를 보면 주인공은 모든 일을 착하게 해결하려고 한다.
-그런데 악한 사람은 그런 착한 사람의 착함을 악용한다.
-그러다 보니 착한 사람은 늘 고통만 당하고,
-악한 사람은 늘 잘 되기만 한다.
-그래서 그런 드라마를 보는 사람은 분통을 느끼게 된다.

2. 그런데 그렇게 악한 사람이 잘 되고, 착한 사람이 잘못되는 것 같은 일은 드라마 속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그런 일은 실재 우리의 삶 속에서도 일어난다.
-그리고 그런 일은 아주 오랜 옛날부터 있어 왔다.

3. 오늘 본문에서 시편 기자가 하는 말이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 본문 1-3절에서 다윗은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이 참으로 이스라엘 중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시나 나는 거의 실족할 뻔하였고 내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으니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시하였음이라” (시 73:1-3)

4. 무슨 말인가?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면 왜 악한 자들이 잘 되고, 선한 사람들이 고통 받는 것을 그냥 보고만 계시는지 답답했다는 것이다.

5. 그러던 중에 드디어 그 비밀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본문 16-19절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내가 어쩌면 이를 알까 하여 생각한 즉 내게 심히 곤란하더니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 갈 때에야 저희 결국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주께서 참으로 저희를 미끄러운 곳에 두시며 파멸에 던지시니 저희가 어찌 그리 졸지에 황폐 되었는가 놀람으로 전멸 하였나이다” (시 73:16-19)

6. 무슨 말인가?
-선한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악한 사람들이 잘 되는 것을 보고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은,
-하나님을 잘 몰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다가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가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온전히 알고 보니 하나님은 과연 공의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7. 우리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 역시 인생을 사는 동안 선한 사람이 고통을 당하고,
-악한 사람이 잘 되는 것을 많이 경험한다.
-우리 주변만 둘러보아도 그런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1) 믿는 사람 보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더 잘 사는 것을 쉽게 본다.
(2) 기도하는 사람 보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들이 더 편안하게 사는 것도 쉽게 볼 수 있다.
(3) 열심히 신앙 생활하는 사람보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더 큰 권세와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도 쉽게 볼 수 있다.

8. 그것 뿐 만이 아니다.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이렇게 열심히 믿어 보아야 무슨 소용 있나 싶은 때도 있다.
(1) 오랫동안 열심히 기도하는데도 불구하고 아무 응답이 없을 때,
-“구하라 그러면 주실 것이요”라는 말씀이 과연 사실인지 의문이 들 때가 있다.
(2)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정말 최선을 다 했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삶에 어려움이 있을 때,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는 말씀이 잘 믿어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
(3) 한 가지 문제가 해결 되고 나면 또 다른 문제가 닥쳐 올 때,
-“모든 것이 합력하여 복이 되게 하신다”는 말씀조차 귀에 들어오지 않을 때가 있다.

9. 그래서 때로는 계속 하나님을 믿어야 하나라는 갈등을 겪기도 한다.
-하지만 믿음을 포기하자니 지금까지 받은 은혜를 부인 할 수가 없고,
-계속 믿자니 인내의 한계를 느끼기도 한다.

10. 실재로 다윗이 그런 경험을 했다.
-그래서 한 번은 하나님을 향해 이렇게 울부짖었다.
-“여호와여 어느 때 까지니이까 나를 영영히 잊으시나이까 주의 얼굴을 나에게서 언제까지 숨기시겠나이까” (시 13:1)
-하나님을 열심히 불렀지만 대답하지 않으셨다.
-열심히 기도 했지만 응답이 없었다.

11. 또, 시 94:3절에는 이런 내용도 있다.
-“여호와여 악인이 언제까지, 악인이 언제까지 개가를 부르리이까” (시 94:3)
-하나님의 공의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왜 하나님은 악인이 잘 되는 것을 그냥 보고만 계시는지 울부짖었던 것이다.

12. 이렇게 선한 사람들은 고통을 당하고,
-악한 사람들은 잘 되는 것을 보면서 흔히 사람들이 하는 말이 있다.
-“사랑의 하나님이 왜 그런 고통을 허락하는가?”라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선한 사람들이 고통당하는 것을 보고만 있는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13. 그런데 한 가지 놀라운 일이 있다.
-세상의 여러 가지 불공평한 일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고 있는 바로 그 순간에,
-하나님은 세상을 향한 당신의 사랑을 보여 주시기 위한 준비를 차근차근 진행하고 계셨다는 것이다.

14. 선한 사람이 고통을 받고, 악한 사람이 잘 되는 일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아주 오랜 옛날부터 그런 일이 있었다.
-그래서 어느 시대든지, 하나님이 사랑의 하나님이시라면 왜 선한 사람들이 억울하게 고통 받는 것을 보고만 계시는가라는 질문을 해 왔다.
(1) 어느 시대 든지 전쟁이 있었고,
(2) 어느 시대 든지 기근이 있었으며,
(3) 어느 시대 든지 억울하게 고통 받는 선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때 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하나님의 공의를 의심했다.

15. 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모든 시대를 거치는 동안 그냥 가만히 계시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은 그런 불공평 해 보이는 세상을 향한 당신의 사랑을 보여 주시기 위한 준비를 차곡차곡 해 오셨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실 것을 준비하셨던 것이다.

16. 언제부터 준비를 하셨는가?
(1) 아담과 하와를 에덴동산에서 쫓아내실 때부터 준비 하셨다.
-많은 신학자들은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 옷을 만들어 입히신 것부터 예수님을 보내시기 위한 준비였다고 한다.
-가죽 옷을 만들기 위해서는 동물을 잡아야 한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 옷을 만들어 입히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예견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2) 그리고 아브라함에게 주신 외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번제물로 바치라고 하신 사건도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한다.
(3) 또, 모세에게 율법을 주시면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에 흠 없는 어린 양을 제물로 드리라고 한 것도 예수님의 죽으심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예수님을 가리켜서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17.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여러 선지자들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고난과 죽으심에 대해 예언하도록 하셨다.
-그리고 그 예수님의 오심에 대해서 요 3:16절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요 3:16)

18. 많은 경우에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서”라고 대답한다.
-맞는 말이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면서 까지 우리를 구원하시려는가?

19. 그 질문에 대한 해답으로 예수님이 요 3:16절을 말씀해 주셨다.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내시기 위하여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에덴동산에서 쫓아내실 때부터 준비하셨다는 것이다.
-무슨 말인가?
-그만큼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이다.

20. 그래서 Tim Keller 목사님은 “사랑의 하나님이 왜 사람들이 고통 당하는 것을 그냥 보고만 계시는가?”라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하셨다.
-“I don’t know why God allows suffering in the world but you cannot say God does not love us when you see how He gave His only Son Jesus Christ to die for us.”
-“하나님께서 왜 세상의 고통을 그냥 보고만 계시는지 알 수는 없지만 당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해 보내 주신 것을 보면 우리를 사랑하지 않는다고는 말 할 수 없다.”

21. 세상에는 이해 할 수 없는 많은 일들이 있다.
-그 중에 하나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다.
-특별히 착한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악한 사람들이 잘 되는 것을 보면 누구나 하나님의 공의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왜 하나님은 그런 불공평한 일을 그냥 보고만 계시는가 라는 질문에는 대답 할 말이 없다.

22. 그러나 하나님에 대해 우리가 분명히 알고 있는 것은 있다.
(1) 하나님은 살아 계신다. 
(2)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신다. 
(3) 하나님은 믿는 성도들과 함께 하신다. 
(4) 하나님은 우리를 반드시 복 되게 해 주신다. 

23. 자라나는 아이들은 부모에 대해 많은 것을 모른다.
(1) 아빠가 무슨 일을 하는지 잘 모른다.
(2) 왜 아침 일찍 집을 나가서 늦게까지 집에 들어오지 않는지 모른다.
(3) 엄마가 어떻게 밥을 만드는지, 어디서 식자재를 사 오는지 모른다.

24. 그러나 부모에 대해서 한 가지 분명히 아는 것은 있다.
(1) 엄마/아빠는 자기를 사랑한다는 것이다.
(2) 엄마/아빠는 자기가 부르면 언제든지 달려온다는 것이다.
(3) 배고프다고 하면 언제든지 먹을 것을 주고,
(4) 추우면 따뜻하게 해 주고, 더우면 시원하게 해 준다는 것이다.

25. 무슨 말인가?
-어린 아이에게 위로가 되는 것은 엄마/아빠가 무엇을 어떻게 하는지를 아는 것이 아니다.
-어린 아이에게 위로가 되는 것은 엄마/아빠가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26.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의 고난을 기념하는 사순절을 보내고 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서교회 성도님들은 이 기간 동안 주님의 고난을 생각하며 모든 죄를 철저히 회개하는 기간이 되기를 바란다.

27. 그러나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예수님은 고난을 통해 보여 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사도 바울은 이런 말을 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롬 8:32)

28. 어렵고 힘든 일이 계속되고 있다.
-왜 하나님이 이런 고통을 허락 하시는지 알 수도 없고,
-어떻게 이런 일들이 합력하여 복이 되는지 알 수도 없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이다.

29. 그러므로 어려운 중에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변치 않는 사랑을 생각하며 믿음으로 잘 이겨 내기를 바란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상, 
-우리는 반드시 잘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