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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3일 (주일설교) 인격적인 사랑의 관계를 원하시는 하나님

글쓴이 : 미디어팀 날짜 : 2021-10-16 (토) 00:00 조회 : 204
인격적인 사랑의 관계를 원하시는 하나님 (마 22:37-40)

1. 오래 전에 어느 목사님께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젊은이들과 대화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 때 한 청년이 자기는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믿지 못하겠다고 하면서,
-사랑의 하나님이 왜 악한 자들이 선한 자들을 괴롭히는 것을 보고만 계시느냐고 물었습니다.

2. 그러자 그 질문을 들은 목사님은 오히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런 일에 개입하지 않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그 학생을 향하여 사람들이 인생을 사는 동안 서로 사랑하는 것은 필수라는 것을 인정하느냐고 물었습니다.
-당연히 그 학생은 사랑이 없는 세상은 생각 할 수도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3. 그러자 목사님은 그 학생에게 두 번째로 질문을 던졌습니다.
-사랑이 온전한 사랑이 되기 위해서는 한 가지 조건이 충당되어야 하는데 그 조건이 무엇인지 아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면서 곧 바로 사랑이 온전한 사랑이 되기 위하여 반드시 필요한 한 가지 조건은 100% 자발적이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만약에 사랑하는 일에 0.1%라고 강제성이 있다면 그것은 절대로 온전한 사랑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4. 그런데 만약 하나님께서 사람들이 하는 일이 마음에 들면 내버려 두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 때마다 간섭하셔서 하지 못하도록 막으신다면,
-그렇다면 하나님은 사람에게 자유를 준 것이냐, 아니냐고 물었습니다.

5. 그러자 그 학생은 당연하다는 듯이 자유를 주신 것이 아니라고 대답했습니다.
-결국, 학생은 자기 질문에 자기가 대답을 한 셈이 되어 버렸습니다.
(1) 만약 하나님께서 사람들이 하는 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일일이 개입하시면 하나님은 사람에게 참 자유를 주신 것이 아니다.
(2) 그리고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참 자유를 주신 것이 아니라면,
-그렇다면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는 것은 온전한 사랑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참 자유가 없이는 100% 자발적인 사랑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6. 그래서 목사님은 결론을 내리기를,
(1) 하나님이 주신 자유가 남용 되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 아니라고 하기 보다는,
(2) 하나님이 주신 자유를 올바로 사용하기 위해 힘쓰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7. 실재로 우리 주변에는 자발적인 사랑이 아니라 강압적인 사랑으로 인해 고통당하는 분들이 생각 보다 많습니다.
-그래서 남편이 아내에게 폭행을 해 가면서까지 강압적으로 자기를 사랑해 줄 것을 요구하는 일로 인하여 아내의 삶이 완전히 파괴되과 가정이 파괴되는 이야기를 다룬 영화들이 있습니다.
-그만큼 그런 일들이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고 있기 때문에 그런 영화들이 만들어 진 입니다.

8. 그런데 그런 일은 부부사이에만 아니라 부모자녀 간에도 있습니다.
(1)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부모 사랑을 강요하는 일도 있고,
(2) 자녀들이 부모에게 자녀 사랑을 강요하는 일도 있습니다.
-그래서 서로 사랑을 요구하고, 강요하는 일로 인해 가정이 파괴되고, 가족들이 깊은 고통과 아픔을 겪는 일도 있습니다.

9. 이렇게 참 사랑은 100% 자발적이어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상식적인 진리입니다.

10. 그런데 그렇게 참 사랑은 100% 자발적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오늘 본문을 보면 한 가지 좀 의아한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사랑을 강요하듯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11. 본문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가장 큰 계명”이라고 하셨습니다.
-“경계할 誡”자에 “목숨 命”자로 되어 있습니다. 
-목숨 바쳐 지켜야 할 명령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영어 성경에는 군대 용어를 써서 “Command”라고 했습니다.

12. 사랑은 100% 자발적일 때에라야 진정한 사랑이 될 수 있는데 왜 예수님은 사랑을 요구하고 명령하신 것일까요?
-왜냐하면 기독교의 핵심은 하나님의 가르침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13. 이렇게 설명 해 보겠습니다.
-한 번은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 14:6)
-즉,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서는 천국영생이라는 최고의 복을 누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14. 그래서 사람들은 말씀대로 순종하려고 많은 노력을 합니다.
-실재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마지막 사명을 맡기시면서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마 28:20)
-그래서 모든 교회마다 성경공부를 통하여, 또는 제자훈련을 통하여 말씀을 가르치고 공부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말씀대로 순종하면 믿음이 좋고, 신앙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15.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고 하셨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예수님의 말씀보다도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라는 것입니다.

16.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신 것과 같은 내용입니다.
-예수님은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가장 큰 계명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가장 큰 계명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라는 것입니다.

17. 순종이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순종을 너무나 귀하게 여기십니다.
(1) 신 28장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면...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신 28:2-6)
(2) 삼상 15장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낫다” 고 하셨습니다. (삼상 15:22)
-사랑하는 성서교회 성도님들은 말씀 순종을 통해 복을 누리게 되기를 바랍니다.

18. 그렇지만 조금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1) 예수님은 순종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셨습니다.
(2) 또, 순종하라는 계명이 가장 큰 계명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가장 큰 계명이라고 하셨습니다.

19. 무슨 말입니까?
(1) 순종을 아무리 잘 한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아무 소용없다는 것입니다.
(2) 반대로, 비록 부족하고 연약해서 100% 순종하지 못한다고 해도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면 괜찮다는 것입니다.

20. 이와 관련하여 이미 많이 들어서 익숙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번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베드로를 지목해서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에게 양떼를 맡기기를 원한다고 하시면서 한 가지 질문을 하셨습니다.
-무슨 질문이었습니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는 질문이었습니다. (요 21:15-17)

21.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내 말대로 하겠느냐?”라고 물어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영혼 구원이라는 중차대한 사명을 맡기시면서 “내 명령에 순종하겠느냐?”라고 묻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하시면서 예수님을 향한 베드로의 마음가짐을 물으셨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기독교의 핵심은 무엇을 얼마나 잘 하느냐라는 것에 있지 않고,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에 있다는 것입니다.

22. 이것을 오늘날 우리에게 적용해 보면 이렇게 됩니다.
(1) 하나님은 우리가 얼마나 예배를 잘 드리느냐 보다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 하는가를 보십니다.
(2) 우리가 얼마나 봉사를 많이 하느냐라는 것보다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 하는가를 보십니다.
(3) 우리가 얼마나 찬양을 잘 하고, 기도를 잘 하느냐라는 것 보다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 하는가를 보신다는 것입니다.

23. 이렇게 하나님은 다른 그 어떤 것보다도 우리와 사랑의 관계를 원하시기 때문에 성경을 통해 끊임없이 우리를 향한 당신의 사랑을 보여 주시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1)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2) 롬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3) 요일 4: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24. 이렇게 하나님은 우리를 향한 사랑을 보여 주셨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사랑의 하나님이심을 온전히 믿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특별히 이유 없이 고난을 당할 때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게 됩니다.

25. 올해는 유난이 자연 재해가 심한 것 같습니다.
-역사적인 산불부터 시작해서 가뭄과 홍수 등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삶의 터전을 갑자기 잃어버렸습니다.
-이런 어려운 일들이 닥치면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라는 말을 하는 것조차 버겁게 여겨집니다.

26. 이렇게 힘든 일들로 인하여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일 수가 없다고 생각한 사람이 한 번은 Tim Keller 목사님에게 그런 질문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사랑의 하나님이라면 어떻게 이런 고통스러운 일들이 일어나도록 가만히 보고만 계시는가?

27. 그 때, Tim Keller 목사님이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1) 왜 사랑의 하나님이 그런 어려운 일이 일어나는 것을 그냥 보고만 계시는지는 알 수 없다.
(2)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 아니라고는 절대로 말 할 수 없다.
(3)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 죄를 용서하고, 우리를 지옥 형벌에서 구원하기 위하여 당신의 독생자를 보내 주셨기 때문이다.

28.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살아계신 분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와 사랑의 관계 속에서 우리를 축복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기독교의 핵심은 신앙 활동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의 핵심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우리 역시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29.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서교회 성도님들은 인생이 아무리 어려워도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굳게 믿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런 하나님의 사랑에 깊이 감격하여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 하나님을 향한 사랑으로 예배하고,
-하나님을 향한 사랑으로 섬기고,
-하나님을 향한 사랑으로 말씀에 순종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30. 그래서 그렇게 하나님을 섬길 때에 비록 부족함이 있고, 모자람이 있어도,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을 보시고 필요한대로 채우시는 하나님의 복을 누리게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