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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1일 (주일설교) 우리를 위한 예수님의 희생

글쓴이 : 미디어팀 날짜 : 2021-08-25 (수) 05:18 조회 : 28
우리를 위한 예수님의 희생 (마 26:6-13)

1. 어느 듯, 7월이 되어 벌써 둘째 주일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한 해의 후반기를 맞으면 “승자는 후반에 웃는다”는 말이 생각납니다.
-무슨 운동이든지 전반과 후반이 있지요.
-그래서 전반전에 이겼다고 해도 후반전에서 지면 폐배하는 것이고,
-전반전에서는 졌다고 해도 후반에 가서 이기면 승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후반에 웃는 사람이 승자라는 것입니다.

2. 그래서 오늘은 본문을 통하여 올해 남은 후반을 어떻게 살아야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우리에게 복어 후반의 승리를 이루게 될 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3. 오늘 본문과 똑 같은 사건을 기록한 요한복음에서는 유월절 엿새 전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이제 앞으로 닷새만 있으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것을 아시고 마지막 며칠을 제자들과 함께 보내고 계셨습니다.

4. 그러던 중에 예루살렘에서 가까운 베다니라는 동네로 가셨는데,
-특별히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으로 가셨다고 했습니다.
-그 당시 유대 사회에서는 한센병 환자는 사람이 사는 마을에 들어오지 못하고 마을 밖에서 격리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그러니까 시몬이라는 사람은 한센병 환자가 아니라 한때는 환자였다가 지금은 다 나은 사람이라고 생각 할 수 있습니다.
-확인 된 것은 아니지만 어쩌면 예수님께서 고쳐 주셨을 수도 있습니다.

5. 아무튼,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기 며칠 전에 시몬의 집에서 제자들과 함께 식사를 하시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한 여인이 예수님께 다가 왔습니다.
-그리고 귀한 향유를 꺼내어서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습니다.
(1) 같은 사건을 기록한 요한복음에 보면 이 여인은 마르다의 동생 마리아라고 했습니다.
(2) 또, 마가복음에는 마리아가 예수님께 부은 향은 나드향이라고 했습니다. 
-그 당시 나드 향유는 나드 향나무 뿌리에서 추출했다고 하는데 나드 향나무는 주로 히말라야 산맥이나 인도에서 재배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마리아는 이스라엘에서는 구할 수 없는 귀한 수입품 향유를 예수님께 부어드렸던 것입니다.

7. 요한복음의 기록에 의하면 마리아가 예수님께 부은 향은 그 당시 시가로 300 데나리온이나 된다고 했습니다.
-그 당시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 한 데나리온 이었습니다.
-그러니까 300 데나리온이면 노동자가 일 년 동안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하는 거액이었습니다.
-그래서 본문 8-9절에는 이런 기록이 있습니다.
-“제자들이 보고 분하여 가로되 무슨 의사로 이것을 허비하느뇨 이것을 많은 값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마 26:8-9)
-예수님의 머리에 조금만 발라 드려도 되는데 왜 그 많은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부어서 낭비하느냐라는 것입니다.

8. 그러자 놀랍게도 예수님은 그렇게 귀한 향유를 낭비한 마리아를 책망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마리아를 책망하는 제자들을 책망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마리아는 오히려 예수님께 좋은 일을 했다고 칭찬하셨습니다.
-여기서 “좋은 일”이라는 말의 원어의 뜻은 “고상하고 아름다운 일”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 이유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여자가 내 몸에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사를 위하여 함이니라” (마 26:12)

9. 예수님은 오늘 본문의 사건이 있기 전부터 제자들에게 당신의 죽으심에 대해서 세 번씩이나 반복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1) 마 16장에서 처음으로 그 말씀 하신 것이 기록 되어 있습니다.
-“이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 (마 16:21)
(2) 또, 마 17장에서 또 한 번 말씀하셨습니다.
-“갈리리에 모일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기워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심히 근심하더라” (마 17:22-23)
(3) 그리고 마 20장에서 세 번째로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기우매 저희가 죽이기로 결안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 주어 그를 능욕하며 째찍질하며 십자가에 못 박게 하리니 제 삼일에 살아나리라” (마 20:18-19)

10. 이렇게 예수님은 죄인들 위하여 죽을 것이라는 말씀을 세 번씩이나 제자들에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제자들은 예수님의 죽으심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중에도 예수님의 죽으심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예수님께 향유를 부은 마리아를 책망하는 제자들을 향하여 예수님은 당신의 죽으심을 말씀하셨습니다.

11. 이렇게 지금 예수님이 처한 상황과, 그리고 예수님이 제자들을 향하여 당신의 죽으심에 대한 말씀을 가만히 살펴보면,
-어쩌면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시려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너희는 마리아가 네게 향유를 부은 것만 생각하고 내가 너희를 위하여 보혈을 흘리는 것은 생각하지 못하는구나”

12. 실재로 본문에서 마리아가 예수님을 위하여 노동자 일 년의 품삯에 해당하는 비싼 향유를 부은 것을 보고,
-우리 역시 예수님을 위해서라면 귀한 것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을 생각합니다.

13. 맞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보혈을 흘리신 것을 믿는다면 우리 역시 예수님을 위해 귀한 것을 예수님께 바치는 일에 주저함이 없어야 합니다.

14. 그러나 본문을 조금 더 넓게 보면 예수님을 위한 마리아의 희생 보다는 죄인들을 위한 예수님의 희생이 더 크게 보입니다.
(1) 마리아는 예수님을 위하여 향유를 부었지만,
(2) 예수님은 죄인들을 위하여 당신의 보혈을 흘리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작 귀한 것을 낭비한 듯 해 보이는 사람은 향유를 예수님께 부은 마리아 보다는,
-죄인들을 위해 당신의 보혈을 부어 주신 예수님이십니다.

14. 바로 이 부분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즉, 오늘 본문의 주인공은 마리아가 아니라 예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의 눈에는 죄인들을 위하여 보혈을 흘리실 예수님 보다는 향유를 예수님께 낭비한 마리아만 보였습니다.

15. 오늘날도 그런 경우가 있습니다.
-오늘날도 우리를 위해 목숨을 희생하신 예수님을 보기 보다는,
-예수님을 위해 보잘 것 없는 조그만 것을 희생하는 우리만 보는 경우가 있습니다. 

16. 그러나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자신에게는 복이 되는 사람은 예수님을 위한 나의 희생 보다는,
-나를 위한 예수님의 희생을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17. 본문의 마리아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성경에 구체적으로 설명이 되어 있지는 않지만 최소한 마리아는 예수님께 귀한 향유를 붓는 것을 낭비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고 존경해서 3년이 넘도록 가족들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라 다녔던 제자들조차도 낭비라고 생각했던 그 일을,
-마리아는 전혀 낭비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당연한 일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그 귀한 향유를 예수님께 모두 부어 드리는 것에 전혀 주저함이 없었습니다.

19. 마리아는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내용을 속속들이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마리아는 예수님을 많이 사랑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향한 깊은 사랑이 마리아로 하여금 거룩한 낭비를 하도록 했던 것입니다.

20. 그래서 예수님은 마리아의 그런 행동에 대해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 (마 26:13)
-그 결과, 오늘 우리에게까지 마리아의 거룩한 낭비가 교훈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21. 바로 여기에 승리하는 후반전을 사는 비결이 있습니다.
-마리아처럼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22. 예수님께서 율법의 가장 큰 계명이 무엇이라고 말씀하셨는지 우리 모두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마 22:37)
-하나님께서 가장 귀하게 여기시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귀하게 여기시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23.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시기 오래 전에 이미 이런 사실을 잘 알았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다윗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시편에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시 18:1)
-무슨 말입니까?
-다윗이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는 말을 들을 만큼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은,
-모든 일을 할 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24. 사도 베드로도 예수 믿는 신앙 때문에 핍박을 받고 있던 성도들에게 이렇게 편지했습니다.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벧전 1:8)
-무슨 말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이 그들로 하여금 시험과 핍박을 이기도록 해 준다는 것입니다.
25. 또, 예수님도 한번은 제자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과 아버지께서 명하시는 대로 행하는 것을 세상이 알기를 원하노라” (요 14:31)
-예수님 역시 죽음에서 부활하사 인생 역전의 승리를 이루셨던 것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 때문이었다는 것입니다.

27.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서교회 성도님들은 저를 포함해서 모두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을 사랑하는 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2021년의 후반을 하나님을 향한 사랑으로 채우게 되기를 바랍니다.

28.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감정적인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을 사랑하겠다는 의지적인 결단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을 사랑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코로나 바이러스를 비롯한 여러 가지 힘들고 어려운 일들 중에도 예수님과 함께 후반에 웃는 승리의 삶이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