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게시물 269건, 최근 0 건
   

6월 20일 (주일설교) 아버지의 마음

글쓴이 : 미디어팀 날짜 : 2021-07-04 (일) 03:15 조회 : 39
아버지의 마음 (롬 8:14-15)

1. 오늘은 Father’s Day에 맞추어 아버지에 대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Father’s Day가 어떻게 시작 되었는지 인터넷을 검색해 보았더니 참 흥미로운 역사가 있었습니다.

2. 1909년에 Washington 주에 있는 어떤 여인이 있었는데 아버지가 어머니 없이 홀로 6 형제자매를 잘 키운 후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그 아버지를 기념하고 싶어서 교회 목사님들과 정치인들, 그리고 사업가들을 찾아다니면서 Father’s Day도 있어야 한다고 설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와싱턴 주에서는 1910년부터 Father’s Day를 지켰습니다.

3. 그 후로 전국적으로 Father’s Day를 연방 기념일로 재정해야 한다는 말이 몇차례 나왔지만 번번히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1) 1913년에 한번 무산이 되었고,
(2) 1924년, 1957년에도 각각 무산이 되었습니다.
(3) 그러다가 1972년이 되어서야 Nixon 대통령이 비로소 연방 기념일로 재정을 해서 지금까지 지켜오고 있습니다.
-Mother’s Day는 Woodlow Wilson 대통령에 의해 1914년에 연방 기념일로 책정 된 것에 비하면,
-Father’s Day는 무려 58년이나 늦게 기념일로 지정이 된 셈입니다.

4. 어떻게 보면 어머니의 사랑에 대해서는 많이 공감을 하지만 아버지의 사랑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공감을 덜 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왜 아버지의 사랑은 어머니의 사랑에 비해 공감이 덜 할까를 생각해 보면 그리 어려운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5. 먼저, 일반적으로 아버지의 사랑은 어머니의 사랑에 비해 아무래도 표현이 좀 덜 되는 편입니다.
-어머니는 식사 준비, 빨래, 아이들 ride 해 주는 것, 등등을 포함해서 아이들의 생활에 구석구석 관여를 합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은 자연히 어머니의 사랑을 느끼게 됩니다.

6. 그런데 아버지들은 어머니들처럼 그렇게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1) 일 갔다 와서 아이들과 잠시 놀아주는 것 외에는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2) 또, 아이들과 함께 하는 activity도 별로 없습니다.
-겨우 며칠 만에 한 두 번 아이들 데리고 공원에 놀러 가는 정도 외에는 아이들과 함께 하는 일이 별로 없습니다.
(3) 그러다 보니 자녀들은 자연히 아버지의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나 activity가 제한 되어 버립니다.
-결국 자녀들은 어머니의 사랑에 비해 아버지의 사랑을 덜 느낄 수 밖에 없습니다.

7. 더군다나, 요즘 젊은 부모들은 어떤지 잘 모르기만,
-저 세대만 해도 아이들을 크게 나무라는 일은 주로 아버지 몫이었습니다.
-조그맣게 실수하는 일은 엄마가 나무라지만,
-크게 잘못하는 일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아버지가 나서야 아이들이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을 수 있다는 논리 때문입니다.

8. 그러다 보니, 아이들에게 아버지는 아무래도 엄마 보다는 거리가 더 멀리 느껴지고.
-엄마는 좀 편안하지만 아버지는 아무래도 엄마 보다는 조금은 신경이 쓰이고 조심스러운 사람으로 느껴집니다.

9.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아버지의 자녀 사랑이 어머니의 자녀 사랑보다 못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거의 대부분, 아버지도 어머니 못지않게 자식들을 사랑하는 마음은 같습니다.
-다만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이 좀 거칠고 무거워서 사랑으로 느껴지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뿐입니다.

10. 그래서 사실 따지고 보면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의 사랑이 오히려 더 애절하지 않나 싶습니다.
-왜냐하면 사랑하는 마음을 모두 다 표현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1) 자녀들을 사랑하기에 실수한 것은 바로 잡아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아이들을 그것을 사랑으로 받아들이지 않눈 경우가 있습니다.
(2) 더군다나 옛날 우리나라의 봉건주의적인 교육을 받았다면 아이를 아무리 사랑해도 어른들 보는 앞에서 그 사랑을 표현할 수 없습니다.
-어머니는 마음껏 자녀 사랑을 표현할 수 있지만,
-아버지는 자녀들을 향해 근엄해야 한다는 풍습 때문에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마음껏 사랑을 보여 줄 수가 없습니다.
(3) 또, 자식 사랑을 마음껏 표현하고 싶어도 혹시나 아이들의 버릇이 나빠질까봐 걱정이 되어서 애정 표현을 삼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니 속으로만 사랑할 뿐입니다.

11. 놀랍게도 그런 일이 하나님께도 일어났습니다.
-인간들을 사랑하는 마음은 너무나 간절한데 그 사랑을 마음껏 베풀 수 없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제일 먼저 에덴동산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1)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실 때에 모든 것이 넉넉하게 준비 되어 있는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의 기쁨과 평안을 누리며 살도록 해 주셨습니다.
-그만큼 사랑을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2)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그만 하나님께 죄를 지어 버렸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식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죄를 지은 후에도 여전히 그들을 사랑하셨습니다.
(3) 그러나 그들을 계속 에덴동산에 머물도록 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공의가 세워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5) 그래서 하나님은 할 수 없이 그들을 에덴동산에서 쫓아 내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을 그냥 쫓아내지 않으시고 짐승의 가죽으로 옷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은 그들을 에덴동산에서 쫓아 내시면서도 그들을 향한 사랑을 보여 주셨던 것입니다.

12. 그리고 오랜 세월 후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애굽의 종살이로 인하여 부르짖었을 때에 그들을 구원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광야 길로 인도하여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1) 광야 생활 40년 동안 매일 먹을 것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2) 적들로부터 보호 해 주셨습니다.
(3) 가나안에 살고 있던 족속들을 물리치도록 해 주셨습니다.
(4) 그리고 그곳에 정착해서 생활 할 수 있도록 해 주셨습니다.
-즉, 그들을 향한 사랑을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13.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주 하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께 죄가 되는 행동을 서슴치 않았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그들을 심판하셨습니다.
(1) 하지만 하나님의 심판은 결코 심판이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2) 하나님의 목적은 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이었습니다.
(3) 즉, 그들이 하나님께 죄가 되는 삶을 떠나 하나님의 복을 누리는 삶을 사는 것이었습니다.

14. 그래서 그런 하나님의 마음을 일찍 깨달았던 다윗은 이렇게 노래  했습니다.
-“주의 성도들아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 거룩한 이름에 감사할찌어다 그 노염은 잠간이요 그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기숙할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시 30:4-5)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노하시는 것은 성도들을 더욱 더 복되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15 또, 이사야 선지자도 그런 하나님의 속성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찌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 (사 1:18)
-이스라엘 백성이 죄를 지었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은혜로 용서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16. 그런 하나님의 마음을 잘 보여주는 역사적이 사건이 있습니다.
-바벨론이라는 신생국을 통해 이스라엘을 침략하도록 하셨습니다.
-바벨론을 들어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지구상에서 없어져 버리도록 완전히 멸망시켜 버리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심판의 말씀을 하시면서 동시에 70년 후에 그들을 다시 회복시키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엇을 보여 주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심판의 목적은 멸망이 아니라 회복이라는 것입니다.
-즉,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은 언제나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15.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런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당장 하나님이 노여워하시는 것만 보았습니다.
-그래서 말라기에는 이런 글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하는도다” (말 1:2)

16. 이러니, 좀 외람되기는 하지만 하나님 노릇하기 참 힘드시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분명히 자기들이 지은 죄로 인하여 심판을 자초했는데,
-막상 심판을 받으면 사랑의 하나님이 왜 이러냐고 하면서 원망을 합니다.
-그렇다고 평상시에 축복해 주시는 것에 대해서 감사하는 것도 아닙니다.
-축복은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감사할 생각도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하나님 노릇 하기가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17.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노릇하기도 힘드신데 그 보다 더 힘든 아버지 노릇을 하시겠다고 자처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롬 8:16)

18. 또, 부활하신 예수님도 마리아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의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요 20:17)

19. 왜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버지가 되기를 원하실까요?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아마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절대 의심하지 말라는 뜻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듯 싶습니다.
-어렸을 때에는 그것이 아버지의 사랑인 줄 몰랐다가 나중에 내가 부모가 되고 난 후에야 비로소 그것이 아버지의 사랑이었음을 깨닫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그렇습니다.
-당시에는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할 수 없었지만 세월이 흐르고 난 후에 보니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이었음을 깨닫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비록 지금 당장은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없다고 해도 하나님은 여전히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의심 없이 믿게 되기를 바랍니다.

20.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라는 사실이 주는 다른 한 가지 놀라운 위로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버지이시기 때문에 모든 아버지들의 마음을 아신다는 것입니다.
(1) 비록 겉으로는 아닌 것 같지만 속은 자식 사랑, 가족 사랑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아십니다.
(2) 가정의 평안과 가족의 행복에 대한 무거운 책임감으로 밤잠을 설친다는 것을 아십니다.
(3) 가장으로서,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팬데믹의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하여 얼마나 고민하는지를 아십니다.

21. 사랑하는 성서교회 모든 아버지들, 팬데믹의 어려운 상황에서도 가정을 지키고, 가족들을 돌보시느라 마음고생 많으셨습니다.
-물론, 모든 어머님들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제, 아버지의 깊은 마음을 아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영원히 사랑하신다는 것을 온전히 믿고 신뢰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모든 아버지들의 가족과 자녀들을 위한 간절한 기도를 모든 아버지들의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Happy Father’s 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