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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7일 (주일설교) 사명을 감당하도록 하시는 하나님

글쓴이 : 미디어팀 날짜 : 2021-03-24 (수) 23:46 조회 : 27
사명을 감당하도록 하시는 하나님 (마 28:18-20)

1. 사순절을 가장 의미 있게 보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예수님의 희생을 헛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세 가지가 있는데
(1) 첫 번째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를 기억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2) 두 번째는 우리의 삶을 하나님의 거룩함으로 풍성하게 채우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2. 오늘은 예수님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하는 마지막 세 번째 내용을 살펴보면서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예수님의 희생을 헛되지 않도록 하는 세 번째 일은,
-“예수님이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는 것”입니다.

3. 예수님을 제자들을 부르실 때에 그들을 제자로 부르시는 이유를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마 4:19)
-무슨 말입니까?
-예수님은 제자들을 사명자로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1) 그들을 구원하고 축복하기만 하기 위해 부르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2) 그냥 그들이 원하는 것을 들어 주시려고 부르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3) 예수님은 제자들을 하늘나라의 일군으로 부르셨습니다.

4. 그런데 안타깝게도 제자들은 예수님의 그런 말씀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1) 오히려 그들은 그렇게 능력이 많으신 예수님을 스승으로 모시면 무슨 좋을 일이 있어날 것 같은 마음에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2) 심지어 가룟 유다 같은 사람은 이스라엘의 독립을 위해 투쟁하는 열심 당원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은 예수님이야 말로 이스라엘을 로마로부터 독립시킬 수 있는 훌륭한 지도자라고 생각하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이 이스라엘을 독립시킬 뜻이 없다는 것을 알고는 바리새인들에게 예수님을 팔아 버렸습니다.

5. 이렇게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르신 목적이 그들을 하늘나라의 사명자로 삼기 원하신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하셨지만,
-그들은 그런 예수님의 말씀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1) 그래서 예수님을 따라 다니면서 서로 누가 크냐는 것 가지고 다투었습니다.
(2) 예수님은 12 제자들 중에서도 특별히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많이 아끼셨는데 아마 그것 때문에 시기 질투도 했을 것입니다.
(3) 더군다나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이 이스라엘을 회복시킬 때에 한 명은 예수님 우편에, 한 명은 예수님 좌편에 앉게 해 달라고 예수님께 부탁할 정도였습니다.
-하늘나라의 사명자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생각 보다는,
-예수님을 스승으로 모시는 자로서 이 땅의 축복을 누릴 것만 생각했던 것입니다.

6. 그렇지만 감사하게도 예수님은 그들을 끝까지 품어 주셨습니다.
-아직 그들의 영혼의 눈이 열리지 않아 예수님에 대해 잘못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런 그들의 무지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때까지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이 죽음에서 부활하시고 난 후에야 겨우 그들은 예수님이 그들을 부르신 참 뜻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7. 그러자 예수님은 하늘로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오늘 읽은 본문 말씀을 들려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마 28:18-20)

8. 무슨 말입니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사명이 있다는 것을 일깨워 주셨던 것입니다.
(1) 제자들을 부르실 때에,
-“내가 너희로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는 말씀으로 부르신 예수님께서,
(2) 그들을 떠나실 때에,
-“세상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은 그냥 부르심을 받은 것이 아니라 하늘나라의 일군으로 부름을 받았다는 것을 분명하게 들려주셨던 것입니다.

9.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도 하나님의 부르심은 모두 사명자로의 부르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게 된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하늘나라의 사명자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벧전 2:9)
-여기에서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도록 하기 위함”이라는 말입니다.

10. 그러니까 예수님은 단순하게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고 이 땅 사는 동안 축복을 누리며 살도록 해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고, 축복해 주실 뿐만 아니라,
-또한 우리에게 사명도 주셨습니다.

11.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진정으로 믿게 되면 우리의 삶이 변합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진정으로 믿게 되면,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12. 그 중에 한 사람이 성경에 나오는 바나바라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제자들이 성령으로 충만하여 예루살렘에서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을 때에 예수를 구줄 믿게 된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게 예수를 구주로 믿은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자기 밭을 팔아서 제자들에게 가지고 왔습니다.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바나바는 그렇게 물질적만 하나님께 헌신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 사람은 사도 바울이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도록 뒤에서 보이지 않게 사명을 감당한 사람이었습니다.

13.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가 되기 전에는 예수 믿는 자들을 무섭게 핍박했던 사람이었습니다.
(1)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한 바리새파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2) 또, 초대 교회의 일곱 집사 중의 한 사람인 스데반 집사님을 사람들이 돌로 쳐 죽일 때에 증인을 서기도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예수 믿는 자들을 핍박하던 사람이 어느 날 예수님을 극적으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를 구주로 믿고 거듭난 사람이 되었습니다.

14. 그렇지만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 사람이 예수 믿는 사람들을 너무나 무섭게 핍박했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이 사람이 예수 믿고 거듭났다는 것을 잘 믿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1) 그 때, 바나바가 고향에 내려가 쉬고 있는 바울을 찾아 갔습니다.
(2) 그리고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와서 제자들에게 보였습니다.
(3) 그러자 비로소 제자들은 바울이 거듭난 것을 인정해 주게 되었고, 바울은 그들의 복음 사역에 동참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15. 무엇을 볼 수 있습니까?
-사도 바울의 삶을 보아도 그렇고, 바나바의 삶을 보아도 그렇고,
-예수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구주로 믿게 되면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는 삶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1) 예수를 구주로 믿으면 모두 바울처럼 사도가 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2) 예수를 구주로 믿으면 모두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가 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3) 예수를 구주로 믿으면 각자 나름대로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는 사명자의 삶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16.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전 10:31절에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고전 10:31)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11. 팬데믹으로 인해 모든 것이 어려워진 이 때에 하나님의 사명을 위해 살아야 한다는 말이 좀 어울리지 않는 말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지금 이렇게 어려을 때에야 말로 더욱 하나님의 사명을 위해 살아야 할 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먼저 구할 때 하나님께서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 주시겠다고 하신 약속이 있기 때문이다.

12. 뿐만 아니라, 우리의 미래가 여기에 달려 있습니다.
(1)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는 길만이 우리가 사는 길입니다.
(2)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는 길만이 우리 교회가 사는 길입니다.

13. 우리가 그토록 사랑하는 우리 자녀들의 미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자녀들은 그냥 예수 믿고 구원 받아  축복 받는 사람들로 키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는 사명자로 키워야 합니다.
-여기에 우리 자녀들의 미래가 있고, 교회의 미래가 있고, 기독교의 미래가 있기 때문입니다.

14. 그렇기 때문에 2부 영어 가족예배를 살려야 합니다.
-우리 교회의 미래, 우리 자녀들의 미래가 여기에 달려 있습니다.
-유치원, 초등학교 자녀들뿐만 아니라 할 수만 있으면 중고등학교 자녀들과 함께 영어 예배를 드리기 바랍니다.
-힘들면 아이들만이라도 영어 가족예배에 참석할 수 있도록 협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이들을 사명자로 키우는 것도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는 중요한 일입니다.

15. 사순절의 거의 절반을 지나고 있습니다.
(1) 예수님의 희생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을 보여 준 사건이었습니다.
(2) 예수님의 희생은 우리의 삶을 하나님의 거룩함으로 채우기 위한 사건이었습니다.
(3) 예수님의 희생은 구원 받고 축복 받는 삶을 사는 것 뿐 아니라,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도록 하기 위한 희생이었습니다.

16. 그러므로 이번 사순절 기간 동안 이것을 깊이 묵상함으로;
(1)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를 사랑하시는 영원한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참 안식과 평강을 누리게 되기를 바랍니다.
(2) 또, 우리의 삶을 하나님의 거룩함으로 채우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우리의 삶이 그리스도의 향기로 가득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3) 그리고, 우리의 생활을 복 되게 해 주실 뿐만 아니라,
-이 땅 사는 동안 하나님의 사명을 잘 감당하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가정에서, 직장에서, 사업처에서, 그리고 교회에서,
-하늘의 사명을 이루는 분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