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게시물 210건, 최근 0 건
   

7월 12일 (주일설교) 고난 중에 지켜야 할 신앙

글쓴이 : 미디어팀 날짜 : 2020-07-11 (토) 03:36 조회 : 21
고난 중에 지켜야 할 신앙 (마 6:25-34)

1. 요즘 어디를 가도 걱정하는 소리 밖에 들리지 않습니다.
-뉴스를 보아도, 누구와 대화를 나누어도 걱정스러운 소리만 들립니다.
-특별히 이 달 말에 실업 수당이 끝나고 나면 어떻게 될지 염려하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2. 오늘 읽은 본문을 보면 그 옛날, 예수님이 사역을 하시던 때도 사람들이 걱정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31절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먹고 마시는 것 때문에 걱정을 해야 할 정도로 어려웠다는 것입니다.
-실재로 많은 신학자들은 그 당시에 중산층은 아예 없고,
-고위층 몇 퍼센트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빈곤층이었다고 합니다.

3. 그래서 예수님은 오늘 33절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 6:33)

4. 참 은혜가 되는 말씀이긴 한데 두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첫째,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나름대로 어려움을 헤쳐 나가는데 왜 꼭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해야 하는가라?”는 것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는 것이 정석이기 때문입니다.

5. 많은 경우에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은 먹고 사는 일에 필요한 것을 채움 받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면 생활에 필요한 것을 채워주겠다고 하신 것은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오히려 죄로 인하여 망가진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라는 것입니다.

6. 그래서 예수님은 오늘 본문 바로 전에 이런 말씀하셨습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 .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마 6:24)
-이런 말씀을 하던 끝에 먹고 마시는 것을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먼저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7. 즉,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은 축복을 누리기 위한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회복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8.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셨을 때에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 속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도록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과의 아름다운 관계 속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기 보다는 자기들의 힘으로 복을 누리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선악과를 따 먹으면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과 같이 될 것이라는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버렸습니다.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 속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기 보다
는 자기들의 지혜, 자기들의 노력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복 못지 않은 복을 누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9. 그러나 아무리 그들이 자기들의 지혜와 능력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것과 똑 같은 복을 누린다고 해도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가 끊어진 상태에서는 절대로 만족할 수 없습니다.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고, 세상의 부귀영화를 모두 누린다고 해도 여전히 만족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가 없기 때문입니다.

10. 부모가 없어도 아이들은 자랍니다.
-심지어 어떤 분들은 자수성가 해서 훌륭하게 성공하기도 합니다.
-무척 아름답고 감동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자수성가하라고 어린 아이를 집 밖으로 내 모는 부모는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이 정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11. 하나님 없이 홀로서기로 살아가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처음부터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 속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도록 창조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함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는 것이 정석입니다.
-다만, 하나님을 알지 못해서 할 수 없이 홀로서기를 하는 것이지,
-처음부터 홀로서기를 하도록 창조되지 않았습니다.

12. 그런데 세상에서는 홀로서기 한 것을 크게 칭찬합니다.
-그래서 홀로서기 한 것을 자랑스럽게 여깁니다.
-당연한 일이고, 본 받을 만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아무도 도와 줄 수 있는 사람이 없을 때의 일입니다.
-생각해 보면 큰 일을 이룬 후에 그런 일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 준 사람과 기쁨을 같이 하는 것이 훨씬 더 아름답고 기쁨도 큽니다.

13. 어렵게 공부를 해서 대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아무도 도와 주는 사람이 없어서 혼자 아르바이트를 하며 졸업을 했습니다.
-졸업식장에서 교수들, 친구들이 모두 축하를 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영혼 깊은 기쁨을 함께 나눌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홀로서기에 성공을 한 것처럼, 기쁨도 홀로 누릴 뿐입니다.

14. 그런데 그렇게 대학을 졸업하게 될 때까지 손발이 다 닳도록 뒷바라지를 해 주신 어머님이 계신다면 어떻게 될까요?
-졸업장을 손에 들고 어머님을 보는 순간 눈물이 앞서지 않을까요?
-온 세상을 향해 “나 혼자 해 내었다”라고 외치는 것 보다,
-어머님의 두 손을 붙잡고 “엄마, 엄마가 도와줘서 해 냈어. 고마워.”라고 하는 것이 훨씬 더 큰 감동과 기쁨이 되지 않을까요?
-그런 모습을 보고 자기 혼자 공부하지 못하고 부모의 도움을 받았다고 책망할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15.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나라의 그의 의를 먼저 구하지 않아도 나 스스로의 힘으로 어려움을 헤쳐 나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창조 원리는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 속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나라를 먼저 구함으로 인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릴 때에 비로서 영의 참 만족과 기쁨이 넘칩니다.

16. 우리 성서교회 성도님들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해서 이 어려운 시기에 생활에 필요한 것을 복으로 누릴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가 회복됨으로 인하여 영혼의 깊은 만족까지 누리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17.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구하면 모든 것을 더 해 주시는 복을 누릴 수 있다고 할 때에 드는 두 번째 의문이 있습니다.
-“믿어지지 않는 걸 어떻게 하지?”라는 것입니다.
-이 질문은 믿는 사람들이 하는 질문입니다.
(1)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습니다.
(2) 하나님의 사랑을 믿습니다.
(3) 예수님의 용서의 은혜와 구원의 은혜도 믿습니다.
(4) 그런데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채워 주신다는 것은 쉽게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를 먼저 구하면서도 여전히 걱정이 앞섭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18. 해답부터 말씀드리면,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의 크고 작음을 보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로 우리를 축복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비록 우리의 믿음이 작다고 해도 하나님은 필요한 축복을 내려 주십니다.

20. 마 8장에 보면 제자들이 배를 타고 호수를 건너게 되었는데 목숨에 위협을 느낄 정도로 큰 풍랑을 만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때 제자들은 주무시던 예수님을 급하게 깨웠습니다.
-그 때 예수님이 잠에서 깨어나신 후에 하신 일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신대 아주 잔잔하게 되니라” (마 8:26)

21. 예수님은 제자들의 적은 믿음을 분명히 책망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제자들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왜냐하면 하나님의 구원과 축복은 우리의 믿음의 크고 작음에 달려 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1) 이스라엘이 출애굽 할 때에 홍해 앞에서 하나님을 믿기 보다는 원망하고 불평했지만 하나님은 홍해를 가르시고 그들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2) 그들은 40년 광야 생활 동안 늘 하나님을 향한 원망과 불평을 달고 살았지만 하나님은 매일 만나와 메추라기를 보내 주셨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시고 축복하신 것은 그들의 믿음이 완벽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의 신실하신 은혜 때문이었습니다.

23. 사실 생각해 보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믿지 못하는 일들이 너무나 많습니.
(1) 그래서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믿는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롬 8:28)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걱정합니다.
(2)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 (벧전 5:7)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근심이 앞섭니다.
(3)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사 41:10)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두려움에 잠을 설칩니다.

24. 그러나 하나님의 축복은 우리의 믿음의 크기에 따라 주어지기 보다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신실하심을 따라 주어 집니다.
-부모가 자녀를 축복하는 것은 자녀가 완벽하기 때문이 아니라,
-부모자녀라는 관계 때문에 축복하듯이,
-하나님이 우리를 축복하시는 것 역시 우리가 완벽하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녀 삼아 주셨기 때문입니다.

25. 여러 가지로 걱정과 염려가 끊이지 않는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 되시고,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됨이 분명한 이상,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를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이것을 믿고 이 어려운 시기가 지나도록 하나님의 나라라 의를 구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우리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이것이 고난 중에 우리가 지켜야 할 신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