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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1일 (주일설교)

글쓴이 : 미디어팀 날짜 : 2020-06-26 (금) 01:12 조회 : 92
하나님을 예배하는 이유 (시 122:1-5)

1. 정말 감격스럽습니다.
-지난 3월 15일부터 온라인 예배를 드리기 시작 한 후로 14주 만에 다시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여러분들은 화면을 통해서나마 저를 보셨지만 저는 여러분들을 볼 수 없어서 많이 보고 싶었습니다.
-아직도 많은 분들이 나올 수 없는 형편이지만 그래도 이렇게 조금이라도 나오신 분들을 만나 보니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습니다.
-또, 비록 교회에 나오지는 못했지만 가정에서 온라인으로 함께 예배하는 분들이 계신다는 것을 생각하면 얼마나 감격이 되고, 감사한지요.

2. 옛날에 다윗도 그런 경험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1절에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사람들이 내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 (시 122:1)
-“여호와의 집”은 여호와의 성전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본문에 “예배”하는 말은 없지만 “여호와 집에 올라가자”는 말은 곧 하나님께 예배하러 가자는 말입니다.

3. 여기에서 어떤 사람들이 다윗에게 예배하러 가자고 말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두 가지는 분명합니다.
(1) 첫째, 그들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은 아주 기쁘고 즐겁고 영광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2) 둘째, 그들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기쁘고, 즐겁고,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에게 예배하러 가자고 초청 했던 것입니다.

4. 그렇다면 그들은 예배가 왜 그렇게 좋다고 믿었던 것이었을까요?
-본문을 통해 몇 가지 이유를 살펴 보십시다.

5. 첫째, 하나님을 예배할 때에 참 평안을 누리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다윗은 2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루살렘아 우리 발이 네 성문 안에 섰도다”
-예루살렘은 “평화”이라는 뜻을 가진 샬롬이라는 말과 어원이 같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이라는 말은 “평안이 있는 곳”이라는 말입니다.

6. 그 예루살렘에 하나님의 성전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곳,
-곧, 하나님을 예배하는 곳에는 평안이 있다는 것입니다.

7. 그래서 본문 3절에서 다윗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루살렘아 너는 조밀한 성읍과 같이 건설 되었도다”
-여기서 “조밀하다”는 말은 원어로 “하바르”라는 말인데,
-이 말은 “함께 묶는다”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성이 조밀하게 지어졌다는 말은,
-예루살렘은 적의 침입을 막고 평안을 누리며 살기에 적당하도록 짜임새 있게 잘 지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곳에는 평안이 있다는 것입니다.

8. 그런데 영적으로 보면 이 예루살렘은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예수님 안에 참 평안이 있기 때문입니다.

9. 대부분의 경우에 예수를 믿어야 하는 이유는 죽어 천국가기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으면 죽어 천국가는 것 뿐만 아니라 이 땅에 사는 동안에 참 평안을 누립니다.
(1) 그래서 성경은 예수님을 가리켜서 “평화의 왕”이라고 합니다. (히 7:20)
(2) 또, 사 53:5절에서는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안을 누린다”고 했습니다.
(3) 예수님도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고 하셨습니다. (요 14:27)

10.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예배 합니다.
-하나님을 예배할 때 하나님의 평강이 임하기 때문입니다.

11. 하나님을 예배해야 하는 두 번째 이유는 하나님을 예배할 때 우리 모두가 하나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4절 “지파들 곧 여호와의 지파들이 여호와의 이름에 감사하려고 이스라엘의 전례대로 그리로 올라가는도다”

12. 영국의 유명한 설교자 Charles Spurgeon 목사님은 이 성경 구절을 가리켜서, 
-이스라엘이 12개의 지파로 나누어져 있지만 하나님을 예배할 때만큼은 지파의 구분 없이 한 민족으로 하나님의 성전에 올라갔다고 했습니다.
-즉, 하나님을 예배할 때 만큼은 12 지파가 하나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13. 온 세계가 사분오열 나누어져서 서로 다투고 있습니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전 세계 어느 곳에도 참 하나 됨을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정치이념으로 갈라져 있지 않으면 인종차별로 갈라져 있고,
-그것도 아니면 빈부격차, 또는 지역 감정으로 갈라져 있습니다.

14. 그런데 오직 한 곳에서 만큼은 있는 사람/없는사람, 배운사람/배우지못한사람, 어른들/아이들, 남자/여자, 흑인/백인, 공화당/민주당, 전라도 사람/경상도 사람, 직장인/사업가, 누구나 다 하나가 되는 곳이 있습니다.

-온 세상이 온통 나누어져 있다고 해도 그곳 한 곳에서 만큼은 모두 하나가 됩니다.
-교회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예배 시간입니다.
(1) 서로 다투다가도 예배할 때는 모두 같은 찬송을 부릅니다.
(2) 서로 자기를 앞세우다가도 예배할 때는 모두 죄인이라고 고백합니다.
(3) 서로 똑똑한체 하다가도 예배할 때는 오직 하나님만 높여 드립니다. 

14. 그래서 Tim Keller 목사님은 “Encounters with Jesus”라는 책에서 요한복음 3장과 4장에 나오는 두 사람을 비교 했습니다.
-요한복음 3장에는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만난 내용이 나옵니다.
(1) 니고데모는 배운 사람이었고, 부요한 사람이었습니다.
(2) 이스라엘의 국회라고 할 수 있는 산헤드린의 회원이었습니다.
(3)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 받는 귀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런 사람을 향하여 “네가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요 3:3)
-즉, 아무리 높은 사람이라고 해도 예수님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15. 그런데 바로 그 후에 요한복음 4장에는 예수님께서 수가성이 여인을 만나는 내용이 나옵니다.
(1) 이 여인은 가진 것도 없고, 배운 것도 없는 여인이었습니다.
(2) 남편 5명에게 버림 받은 비운의 여인이었습니다.
(3) 동네 사람들이 모두 외면하는 천한 사람이었습니다.

16. 그런데 예수님은 그 여인에게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요 4:14)
-무슨 말입니까?
-“너도 내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17. 니고데모와 수가성의 여인은 신분으로 보면 극과 극이었습니다.
(1) 니고데모는 유대인 남자였고, 수가성의 여인은 유대인들이 개처럼 여기던 사마리아 여인이었습니다.
(2) 니고데모는 근접하기 어려운 높은 사람이었고,
-수가성의 여인은 버림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3) 신분으로 보나, 사회적 지위로 보나, 경제적으로 보나 니고데모와 수가성의 여인은 도저히 하나가 될 수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서로 다른 두 사람이 예수님을 구주로 믿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 이름만 들어도 같은 감동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도저히 하나가 될 수 없는 두 사람이 예수님 안에서 하나가 되었던 것입니다.

18.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하나님을 예배 할 때 우리는 우리를 갈라 놓는 모든 것을 내려 놓고 진정으로 하나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19. 하나님을 예배해야 하는 세 번째 이유는 본문 6절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거기 판단의 보좌를 두셨으니 곧 다윗 집의 보좌로다” (시 122:5)
-“보좌가 있다”는 말은 하나님이 계신 곳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예배하는 그곳이 바로 아버지가 계신 집이라는 것입니다.
20.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해야 하는 세 번째 이유를 이렇게 말 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은 한국말 보다 영어로 표현하는 것이 훨씬 더 뜻이 분명합니다.
-“We worship God because when we worship God, we are home.”
-굳이 번역을 하자면 “하나님을 예배할 때 우리는 집에 있게 된다”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만 영어로 표현할 때의 느낌이 그대로 전달 되지 않아서 안타깝습니다.

20, “Home”은 보통 “가정”으로 번역합니다.
(1) 가정이라는 말은 사회적 단위, 또는 조직을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2) 그러나 영어로 “Home”이라는 말은 정서적인 의미가 더 강합니다.
-그래서 “Home”이라고 하면 부모님의 사랑이 있고, 보호가 있고, 위로가 있고,
-언제든지, 무슨 일이든지, 마음 놓고 찾아가서 따뜻하게 쉴 수 있는 곳을 가리킵니다.

21. 한국에 계신 부모님들이 계시지 않으면 한국에 나가도 예전 같지 않다는 말을 합니다.
-아무리 형제들이 있어도 부모님이 계시는 것과 같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부모님이 계시지 않으면 아무리 형제라고 해도 아무 때나 불쑥 찾아가기에는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부모님이 계신 곳은 그곳이 어디든지, 언제라도, 아무 때라도 편안한게 찾아 갈 수 있습니다.
-부모님의 집은 바로 내 집이기 때문입니다.

21. 그런 부모님이 계신 집은 내가 사는 집과도 다릅니다.
-내가 가정을 이루고 사는 곳도 home이라고 할 수 있지만,
-부모님이 계신 집은 내가 사는 집과는 또 다른 느낌이 있습니다.

22. 얼마전에 딸을 시집 보낸 친구가 들려 준 이야기입니다.
-결혼한 후 몇달 만에 처음 친정에 왔다가면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엄마아빠가 있는 곳이 내 home 이야”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리기는 했지만 그래도 엄마아빠가 있는 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평안함이 있기에 그런 말을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우리가 예배할 때에 하나님의 home에 있게 된다는 말이 바로 그런 말입니다.

23. 미국의 유명한 가수 중에 John Denver이라는 사람이 부른 “Take Me Home, Country Road”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1971년 4월 12일에 발표된 곡인데 우리 아이들도 잘 알 정도로 지금까지 인기를 얻고 있는 노래입니다.
-그 노래 가사 중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Country roads, take me home, to the place, I belong”
-시골 길을 따라 내가 있어야 할 고향, 어머님이 계신 고향으로 간다는 내용입니다.
-그러면서 “I should’ve been home yesterday”라고 노래 했습니다.
-진작 왔어야 했다는 말입니다.
-그만큼 home은 어머니의 사랑과 위로와 보호가 있는 곳이라는 것입니다.

22. 예배는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기쁜 마음으로, 벅찬 감동으로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1)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할 때에 힘든 세상에서 하늘의 평안을 누리기 때문입니다.
(2)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할 때에 모두 하나가 되기 때문입니다.
(3)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할 때에 we are home, 우리가 있어야 할 home에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When we worship God, we are home.